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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대중 골프교실⑪] 역사적으로 캐디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었나?<下>
작성자 : 김기우
2020-12-24 (167)
(조세금융신문=김대중 골프앤 공동대표) 넷째, 프로 골퍼(Professional Golfer)가 되기 위한 시대



19세기가 되면서 캐디들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당시 골프는 축구와 더불어 귀족들 만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어서, 평민들에게는 그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귀족 전유물이었던 골프 그런데 19세기 스코틀랜드의 골프장에서는 캐디를 이용하는 일이 점차 증가했다. 어린 나이에 캐디를 하던 평민들이 당연하게도 골프에 관련된 것들을 배우기 시작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올드 톰 모리스도 14살 어린 나이에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장에서 세계 최초의 프로 골퍼로 알려진 앨런 로버스톤(Allen Roberston, 1815-1859)의 제자가 되어서 페더리 볼 만드는 법, 클럽 만드는 법과 골프를 배웠다. 이후 디오픈에서 1861, 1862, 1864, 1867 총 4회 우승 기록을 달성했다.



올드 톰 모리스의 아들이자 최초의 슈퍼스타였던 영 톰 모리스(Young Tom Morris, 1851-1875)는 캐디 출신이 아닌 프로골퍼로 더 유명했을 정도로 프로 골퍼가 되기 위해서 캐디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시기가 되었다. 슈퍼스타 영 톰 모리스는 1868년 17살 어린 나이에 디 오픈을 우승한 후 1869, 1870 3회 연속 우승을 하였고 1872에 다시 우승을 하였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짧지만 골프 역사에 혁혁한 이름을 날렸고, 그의 경기가 열리면 그를 보기 위해서 구름 관중들이 몰렸다고 한다. 2009년 골프매거진 조사한 최고의 골퍼에서 영 톰 모리스는 14위 그의 아버지 올드 톰 모리스는 19위에 랭크되었다.



이후 현대 골프의 창시자이자 아직까지 디오픈 6회 우승이라는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 해리 바든(Harry Vardon, 1870-1937) 역시도 캐디 출신이다.



기록에 의하면, 1870년 세인트 앤드류스에 등록된 21명의 캐디 중에 3명이 디오픈 우승자다. 1873년 톰 키드(Thomas Kidd), 1876년 밥 마틴(Bob Martin), 1883년 윌리 퍼니(Willie Fernie). 초기 캐디들은 코스 관리를 도왔으며, 1890년에 이르러 세인트 앤드류스의 캐디들의 노력으로 현대 골프의 혁신적 모습인 골프 백을 고안함으로 인해서 골프클럽을 핸들링하기 쉬워졌다.



모리스 부자 [출처=위키페디아(www.wikipedia.org)]
▲ 모리스 부자 [출처=위키페디아(www.wikipedia.org)]


한편 미국의 캐디는 스코틀랜드와는 전혀 다르게 골프장 도제 방식이 아니라 캐디 학교에 다녔으며, 대부분 어린 소년들이었고, 골프의 기본은 물론 캐디가 갖춰야 할 예의, 골프 클럽 관리법까지 철저하게 배웠다고 한다. 클럽의 감독관이 따로 캐디를 관리하는 엄격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많은 소년들이 캐디를 하려고 했던 데는 낮 시간의 근무를 마치면 저녁 시간대에 골프를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13년 US Open 우승자 프랑시스 위멧(Francis Ouimet), 1916년 US Open과 US Amateur을 동시 우승한 칙 에반스(Chick Evans), 1922년 US Open 우승자 진 사라젠(Gene Sarazen), 통산 메이저 9승 벤 호건(William Ben Hogan), 사상 최초로 4개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샘 스니드(Samuel Jackson Snead)[, 1922년 미국인으로 처음으로 디오픈을 우승한 월터 하겐(Walter  Charles Hagen), 아직도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 메이저 18승, PGA 73승의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 등 20세기 초반의 많은 프로 골퍼들이 캐디 출신이었다.



다섯째, 클럽 캐디의 암흑기와 프로 캐디(Professional Caddie or Tour Caddie)의 등장



1918년 미국의 모든 주에서 최소한 초등학교 단계까지를 의무교육 기간으로 지정하는 법안이 마련되었다.[iv] 이를 계기로 캐디 교육을 받던 어린 아이들은 학교에 가게 되고 캐디는 점차적으로 하류 계층의 단순한 일로 전락하고 말았고, 이 때부터 캐디는 인생 낙오자나 술주정뱅이가 하는 일로 여겨졌다.



1950년대까지는 미국에서 캐디가 없는 골프 클럽이 없었으며, 메이저 대회나 PGA투어를 개최할 때 선수들이 클럽 캐디를 사용하도록 했으며, 한 명의 캐디가 한 명의 골퍼에게 소속되어 라운드를 나간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골퍼들은 매주 새로운 캐디를 고용했다. 심지어 대회 당일 주차장에서 캐디를 고용하기 했다고 한다.



또한 1950년대 미국에 카트가 도입되면서 하우스 캐디의 암흑기가 도래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1953년 탬오샌터 골프클럽(Tam-O-Shanter Golf Club)의 CEO 조지 메이(Gorge S. May) 골프 대회를 전국에 방영시키고 또한 그가 주최한 골프 대회 상금을 엄청나게 증가시키면서 골프의 폭 넓은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로 인하여 골퍼들의 수입이 증가되면서 본격적으로 투어 캐디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가 최초로 회원들에 한해서 카트를 전격적으로 도입하는 바람에 하우스 캐디들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하우스 캐디들이 없는 골프장에서 캐디를 구할 수 없는 프로 골퍼들은 투어 대회를 함께할 프로 캐디를 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때 캐디는 별 볼 일없는 사람들을 위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대회의 상금이 급증하면서, 가장 각광받는 직업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국내에서도 캐디라는 직업은 고수익업종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의 캐디(Caddie or caddy)가 하는 일은 골퍼의 클럽을 운반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현대의 캐디는 다른 운동경기의 코치와 같이 골프코스의 장애물 등과 거리 등을 파악해서 골퍼들에게 어떤 클럽으로 공략하는 것이 제일 좋은 지 등에 대해서 조언하는 일등을 하고 있다.



여섯째, 한국적 캐디의 시작



1950년대 하우스 캐디의 암흑기와 프로 캐디의 탄생을 거쳐 2000년대 들어서 한국적 캐디가 생겨나게 된다.



한국적 캐디의 등장은 한국 골프장에 캐디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이다. 2000년대 한국적 캐디가 등장하기 전 캐디가 어떤 역할을 했는 지에 관해서는 1989년도에 캐디의 근무여건을 알기 위해 2013년 프레시안의 기사를 인용하였다.[vi]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캐디들의 주된 업무는 내장객의 골프 가방과 모래주머니를 메고 라운드를 돌면서 골프채를 꺼내 주고 숲 속에 들어간 공을 찾아주며 흙으로 더러워진 공을 닦아주는 등 내장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잔디가 팬 곳을 모래로 메우는 것 등이다.



잔디 파손 부분의 손질은 골프 규칙상으로는 경기인인 내장객의 의무로 되어 있지만 보통 캐디가 담당한다. 경기 진행이 늦을 경우 캐디들이 회사로부터 제재를 받게 되어 경기 진행 속도도 조절해야 하고, 근무 도중에는 회사의 지시 사항과 수칙을 준수해야만 한다.’



불과 30년 전 캐디는 고객의 골프 백을 들어주고, 골프 클럽을 꺼내 주고, 볼을 찾아 주고, 그린에서 볼을 닦아주며, 모래 주머니를 메고 다니면서 배토를 하고,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현재 2020년 캐디는 골퍼와 함께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경기를 진행하는 진행자이며 골프 코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조언하는 조언자, 골프클럽 선정에 도움을 주는 도우미, 그린에서 라인을 봐주는 코치, 경기의 모든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기록하는 일도 담당하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 변해왔다.



다음에는 “최초의 캐디는 누구일까?”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프로필] 김대중

2019년~현재: (주)골프앤(www.golf-n.co.kr) 공동대표

2010년~2019년: 스프랭캠프 대표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박사과정 수료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일본 국립 츠쿠바대학(筑波大?)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前) 한국무역협회, 홍익대학교, 가톨릭관동대학교 강사

저서: 인터넷마케팅길라잡이, 인터넷창업길라잡이, 인터넷무역실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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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조세금융신문_11_하.pdf